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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문서는 무엇?

Created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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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The Official First Printing of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 displayed at Sotheby's, New York, photo by me
11월 18일에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가장 큰 화제를 낳은 것은 한 문서였습니다. 1787년 9월에 만들어진 미국 헌법의 초판본이 경매에 나온다고 발표했을 때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가장 비싼 문서로 알려진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코덱스 레스터였습니다. 빌 게이츠가 27년 전, 약 350억 원에 구매한 이후 이 기록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보통이라면, 헌법이나 독립선언문과 같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문서는 서적 및 원고 Books & Manuscripts 분과에서 다룹니다. 하지만 이 분과의 경매는 매니아를 제외하고는 별 관심을 모으지 못하지요.
희귀한 헌법 초판본을 제대로 팔기 위해 소더비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11월 경매 기간에 이 한 품목을 단일 경매로 진행하기로 결정합니다. 헌법 초판본은 6페이지 분량의 문서로, 현재 총 13개가 남아있으며 그 중 11개는 공공기관이, 2개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단 두 점 뿐인 개인 소장품 중 하나가 경매에 나온 것이지요. 예상가를 180억~240억 원대로 제시할 만큼, 컬렉터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의외의 응찰자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17,437명으로 구성된 ConstitutionDAO 입니다. 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는 중앙집권체제를 해체하고 자율적인 활동을 하는 조직을 의미합니다. ConstitutionDAO의 유일한 목적은 헌법 초판본 경매에 입찰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헌법을 모든 사람의 손으로 돌려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헌법 초판본을 함께 구매해 누구라도 언제나 이 문서를 볼 수 있도록 전시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더리움을 지불수단으로 모금을 벌였습니다.
11월 11일에 ConstitutionDAO가 시작되었고, 불과 7일 동안 전세계에서 17,437명이 약 500억 원 상당의 이더리움을 보탰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보낸 이더리움의 규모에 따라 헌법 초판본을 지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금액만큼 토큰을 받고 초판본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한 투표권을 얻는 것입니다.
ConstitutionDAO 아이디어를 낸 인물은 그래험 노박과 오스틴 케인이라는 이름의 25세 청년들입니다. 이들이 트위터와 디스코드를 통해 소통하면서 선임한 대표자가 18일 경매에 참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헌법 초판본은 다른 사람에게 낙찰되었습니다. 경매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제반 비용을 포함한 응찰 가능 금액을 넘어선 약 470억 원에 도달했을 때 포기해야했습니다. 비록 낙찰받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시도는 그 규모와 운영 방식으로 언론의 관심을 크게 받았습니다.
헌법 초판본을 약 514억 원 ($43 million)에 최종 낙찰받은 사람은 빌리어네어 아트 컬렉터이자 금융인인 케네스 그리핀입니다. 의미심장하게도 그리핀은 개인투자자의 적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소규모 투자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주식거래 플랫폼인 로빈후드가 게임스탑 종목 거래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리핀의 회사인 시타델 Citadel이 압력을 가해 한동안 거래중지가 일어났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게임스탑을 포함한 여러 개인투자자들이 집중하던 종목의 주가가 꺾이는데 영향을 일으켰습니다. 굉장히 논란이 되었던 사건의 중심에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핀은 경매 다음 날 구매한 헌법 초판본을 아칸소에 위치한 크리스탈 브리지스 뮤지엄에 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크리스탈 브리지스 뮤지엄은 월마트 그룹의 상속인인 앨리스 월턴이 연 미술관입니다. 이 역사적인 문서를 미술관을 방문하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경매는 Web3와 DAO라는 개념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로 남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여전히 전통적인 자본이 힘이 세다는 증명을 하기는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