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MacKenzie Scott, photo by Evan Agostini/Invision, via Associated Press
일 년 동안 매표소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던 공연장 앞으로 100억 원짜리 수표가 도착한다면? 그 우편물을 받은 사람의 심정을 상상하실 수 있나요? 미국에 있는 286개의 비영리 단체가 그런 놀라움을 경험했습니다. 우편물은 아니고 이메일로요.
소설가이자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의 전 부인인 매켄지 스콧이 약 3조 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6월 15일에 스콧 본인이 트위터와 미디엄을 통해 어떤 단체에 기부했는지 발표했습니다. 스콧은 지금까지 모두 10조 원에 달하는 재산을 기부했는데요. 이번 기부는 그 세 번째입니다. 자신이 살아있을 때 최대한 기부해서 남아있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존 주가의 상승으로 빠르게 재산이 불고 있다는 것이 함정)
지난 기부 행렬에서 빠졌던 예술 및 문화 단체가 이번에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인종이나 젠더 문제에 집중하는 단체가 포함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Apollo Theater, Art for Justice Fund, The Studio Museum in Harlem, Funders for LGBTQ Issues, Womankind, the National Museum of Mexican Art, Asian American Federation, Asian Pacific Fund 와 같은 단체의 이름을 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부호들이 기부하기를 선호했던 대형 미술관이나 대학의 이름은 빠져있습니다.
이번에 문화 및 예술 단체들을 다수 포함시킨 것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밝혔습니다. "예술과 문화 기관은 커뮤니티를 강화시키고, 공간을 탈바꿈시키며, 공감을 키우고,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경제적 유동성을 촉진시키고, 교육 효과를 증진시키며, 범죄율을 낮추고, 정신의 건강을 개선한다. 우리는 이제까지 기부자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그러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배경을 지닌 아티스트와 관객과 함께 이러한 예술과 문화의 장점을 창조하는 작은 단체들을 평가하여 결정을 내렸다."
스콧이 선택한 방식은 '조건 없는' 기부입니다. 이제까지 작품 구매, 새로운 공간 설치, 무료 입장 프로그램과 같은 특정 분야에만 기금을 쓰는 것을 허락하는 '조건 있는' 기부가 보편적으로 퍼져있습니다. 기금이 사용되는 경우 기부자의 이름이 반복되어 등장하고 이 수혜를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부처럼 '내 돈은 이제 네 돈이니 전문가가 알아서 쓰시라'고 조건 없이 내어주는 경우는 뉴욕타임즈가 지적한 것처럼 "매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접근"입니다.
스콧은 자신이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와 기부를 한 단체의 이름을 미디엄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미디엄은 글쓰기 플랫폼으로 유명한데요. 일반인은 물론 유명인과 전문가들이 자신의 블로그처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선사업의 역사에 들어갈 정도로 대규모의 기부를, PR팀이 보도자료를 돌리고 기부자가 TV 인터뷰를 하며 발표하는 것이 아닌, 블로그 글로 알리는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부유한 유명인이 1조 원을 나눠주며 든 생각을 좋아하는 시와 함께 브런치에 글로 썼다고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오는지 감을 잡으실 수 있겠죠. (스콧이 실제로 인용한 시는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의 것입니다.)
스콧은 왜 기부 행위의 중심에 필요한 이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기관과 단체가 있지 않고 기부자의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자신의 포스트에서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자선 재단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글을 통해 불균형하게 집중된 부가 소수의 손에 남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부 배경을 밝혔습니다. 기부의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는 매켄지 스콧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