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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레이몬드 페티본과 영아티스트의 추락

Created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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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Christian Rosa at the Rema Hort Mann Foundation L.A. Artist Initiative Benefit Auction, 2013, photo by Stefanie Keenan/WireImage.
매일같이 젊은 작가의 작품이 수억 원에 거래가 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옵니다. 커리어의 정점을 삼십 대 중반에 찍은 것인지, 이제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지요. 이번 주에 보도된 한 아티스트의 이야기는 그런 열광의 뒤안길에 존재하는 어두움을 드러냅니다.
아티스트 크리스찬 로사 (43)가 판매한 것으로 의심되는 레이몬드 페티본의 작품들이 사실 로사가 조작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드로잉 작품으로 유명한 페티본의 최고가는 약 31억 원에 달하며 널리 컬렉팅되고 있는 아티스트이지요.
이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있는데요. 페티본의 스튜디오에 방문했던 로사가 절반 정도 완성된 그림 몇 점을 작가가 모르게 가지고 나와 본인이 완성시킨 것을 페티본의 순수창작품인 것처럼 판매한 것이 혐의의 초점입니다.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미술 시장에 나온 일련의 작품을 본 페티본 컬렉터들이 차이점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작년의 일입니다. 페티본의 시그니쳐라고 알려진 거대한 파도 이미지가 화면 전체에 펼쳐지는 작품들인데, 그가 쓰지 않는 노란색이 파도 사이사이에 등장했습니다. 또한 페티본은 텍스트를 적어넣곤 했는데 어휘의 사용과 모양새가 사뭇 달랐습니다. 문제의 작품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나온 인물이 크리스찬 로사였습니다.
의혹이 커지면서 FBI의 예술절도범죄 분과가 조사에 들어갔고 지난 수요일인 10월 13일, 금융 사기와 신원 도용 혐의로 로사를 기소했습니다. 로사가 페티본의 작품 스타일과 서명을 흉내내어 작품을 만들고, 진품감정증명서를 위조하여 판매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최고 20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때 촉망받던 젊은 작가의 추락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로사는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시기에 미술시장의 큰 관심을 받으며 아트페어와 옥션에서 라이징 스타로 주가를 올렸습니다. 2014년에 그 정점을 찍어, 경매 낙찰가가 2억 원을 넘었으며, 뉴욕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화이트큐브 갤러리의 부스 중앙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스튜디오를 고 야심찬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죠. 그러나 그 이후 작품가는 점점 떨어졌고, 올해 경매에 나온 작품은 5천만 원을 넘기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사이 레이몬드 페티본의 작품은 지속적으로 가치가 상승하여 탄탄한 블루칩 작가로 여겨지게 되었는데요. 한때 동료이자, 친구, 그리고 선후배 사이였던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멀어졌습니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던 로사는 현재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요즘의 영아티스트 트렌드를 읽으며 과연 5년 후, 10년 후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특히 크리스찬 로사의 추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의문과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때 그 아티스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작품을 마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