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L'Arc de Triomphe, Wrapped>, photo by Benjamin Loyseau,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파리의 개선문이 거대한 천으로 포장되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장관이죠?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부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두 아티스트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 실현되었습니다.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10월 3일까지 계속됩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공공 미술입니다.
9월 18일에 공개된 이번 작품을 위해 재활용으로 만들어진 2만 5천 제곱미터 크기의 은색 천이 사용되었고 7천 미터 길이의 붉은 밧줄이 천을 동여매는데 쓰였습니다. 작품에 사용된 천과 밧줄은 전시가 끝난 후에 재활용될 예정입니다.
1958년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 있던 불가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젊은 예술가 크리스토는 3년 후, 파리 개선문 근처의 작은 방에서 살면서 개선문을 포장하는 상상을 키웠습니다. 이 시기에 평생의 파트너가 된 잔-클로드와 함께 포토몽타주를 만들어 계획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기도 했지만 필요한 허가를 받을 수 있을거란 기대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이 꿈을 꾸었고, 마침대 그들의 계획은 60년 만에 실현되었습니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부부는 잘 알려진 조형물이나 건축물을 거대한 천으로 감싸는 예술 활동을 선보여왔습니다. 야외에서 단기간 동안만 존재하는 속성을 가진 그들의 작품은 개념 미술 혹은 대지 미술로 분류됩니다. 1985년 파리 퐁네프 다리를 천으로 감싼 작품과 2005년 뉴욕 센트럴파크에 주황색 문 7천5백 개를 세운 <더 게이츠>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2009년에 잔-클로드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활동을 이어나가던 크리스토는 개선문 프로젝트가 거의 실현단계에 가까워진 2020년 5월에 작고했습니다. 자칫 무산될 수도 있었지만 크리스토의 조카 블라디미르 자바체프가 프로젝트를 이어갔습니다.
개선문은 1806년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방향을 틀 때마다 개선문 역시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고 상처도 받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군인의 유해를 개선문 아래에 묻기도 했습니다. 나치 점령기에는 나치 독일기가 개선문 위에서 휘날렸습니다. 여러 감정과 시대의 굴곡이 고스란히 이곳에 새겨져있습니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는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포장해 가려서 늘 보던 것을 새롭고 낯설게 보도록 합니다. 개선문이 사라진 샹젤리제는 묘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안 보이니까 오히려 개선문이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더 생각하게 됩니다.
작품을 소개하는 16일 기념 행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 프로젝트에 공공 기금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만든 포토몽타주, 드로잉, 콜라주, 설계도와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제작한 석판화 등을 판매한 수익으로 프로젝트의 경비를 충당했습니다. 두 아티스트는 생전에도 작품에 관련된 것들을 판매하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직접적으로 받아 함께 실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정 단체, 거대 후원자, 정부의 금전적 도움이 없어도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자유를 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티스트의 미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은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이런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라면 그 울림이 더 크죠. 왜 개선문처럼 아름다운 조형물을 쓰레기 봉지로 덮어야하느냐는 비아냥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소주의가 뭘 성취할 수 있을까요? 이번 프로젝트는 프랑스가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메세지를 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파리까지 여행가기 어려우신가요? 유튜브 라이브로 개선문의 현재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하루의 변화를 보는 재미에 저도 시간이 날때마다 들르고 있어요.